2016년 결산 by 글로

1. 독서





올해의 독서 키워드는 네가지로 압축될 것 같다. '원서' '전자책' '논픽션' '번역'

한창 독서에 열중할 무렵, 내가 읽은 책들은 장르 문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역서였다. 보르헤스 할아버지의 세례를 받은 후, 나는 오역엔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정성스런 오역 같은건 오히려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있어서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노력과 애정이 부족한 번역물이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초벌 번역을 다듬지 않은 책들, 자기가 번역 가능한 다른 언어의 번역물로 중역한 책들... 언제부턴가 이런 '일감 A' 수준의 편이적인 작업 거쳐 출판되는 것에 더 이상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영미권과 일본 작가들의 책은 원서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요 몇년 사이에 그것이 더욱 수월해진 느낌이 있다. 욕을 많이 먹는 모 인터넷 서점은, 원서, 특히 일본 작가들의 문고본 판형의 책들을 구입하는기 매우 좋은 곳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전자책이 활성화된 것도 원서 구입이 편해진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리디북스 페이퍼 같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수백권의 전자책 세트와 구입한 이후로 리디북스, 아마존과 일본의 북워커에서 전자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올 한해 구매한 책은 아마존에선 6권, 북워커에서는 17권 가량이다. 오프로 구입한 책 10권 정도만 생각하다 전자책을 셈에 넣으면, 올 한해 한달에 세권 정도는 꾸준히 구입한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 놀라게 된다. 워낙 할인을 자주 하기 때문에 관심 목록에 넣어뒀던 것들이 반값이란 알림을 받게 되면 거의 반사적으로 사게 되는 것 같다.

원서와 전자책 위주로 독서의 관심이 옮겨 가면서 관심이 가는 주제와 읽는 방식도 변화하게 되었다. 먼저 전에 없이 논픽션을 많이 읽은 해였던것 같다. 논픽션은 그 특성상 일상적인 언어 위주로 쓰여지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고, 장르 문학의 섭취량이 너무 많아 균형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 두번째 이유였던것 같다. 거기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허구를 도락으로서 순수하게 즐기기 어려워진 것 같단 이유더 덧붙일 수 있을것 같다. 대부분의 장르문학은 성장을 중요한 테마 중 하나로 잡기 마련인데, 이젠 후치의 머리가 여무는 것보단 소로우가 자 이제부터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제가 생각해낸 존나 쿨하게 사는 방식을 보여드립니다...하고 썰을 푸는 것(물론 월든은 이렇게 자뻑어린 문체로 쓰여져 있지 않다)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한편 전자책이란 특성 탓에 굉장히 편하게 볼 수 있어(책장이 넘어가지 않게 시종일관 누르고 있지 않아도 된다, PC와 리더기, 핸드폰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 그냥 읽기보단 번역을 하면서 읽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냥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대목은 노트와 리더기를 들고 고즈넉한 시간에 까페에 가서, 아니면 집에 아무도 없을 때 PC화면 반쪽에 띄워놓고, 펜이나 키보드로 옮겨적는다. 처음엔 두서없이 손에 잡히는 곳에 번역물을 남긴 탓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습관이 되니 그럭저럭 정돈이 되고 찬찬히 훑어보면 그냥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옹알옹알 솟아나오는 것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당연 한권을 주파하는 속도는 말도 안되게 느려졌지만, 손에 잡으면 한두시간안에 다 읽고 책장에 꽂아놓던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고, 지금은 그 느긋함이 더 마음에 든다.

2016년의 독서 형태는 내년에도 죽 이어질 것 같다.







2. 달리기




올해 달린 거리는 1,382km 이다. 작년에 863km 를 달렸으니 500km 가량을 늘린 셈이다. 매회 9km 가량을 달려 153회. 당초 목표는 하루 건너 한번씩 뛰어 1650km 가량을 뛰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이렇게 계산해보기 전만 해도 올해 정말 못 뛴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는데 나름 근접한 걸 보니 기쁨반 아쉬움반인 묘한 심정이다. 조금만 더 뛰었더라면 목표를 달성했을 텐데.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니 몇달 간 공백이 있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가장 긴 공백이 열흘 정도였다. 작년엔 10월부터 운동량이 대폭 늘었지만 올해는 오히려 다소 줄었다. 일이 많아 바쁜 시기일수록 사적인 약속을 미루고 잠을 줄여가며 달렸는데, 한가해진 10월부턴 오히려 빈둥거려서 작년보다 매달 20~30km 정도 적게 뛴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 혹은 달리는 말에 더욱 채찍질을 하는 타입인것 같다.

올해 달리기에서 인상에 남았던걸 몇가지 꼽아보자면 일단 러닝기어가 있겠다. 달리기 시작한 후로 신발 말곤 별로 신경을 써본적이 없다. 그래서 땀이 많은 한여름이나 얼어붙는 한겨울엔 뛰고나면 몸 여기저기가 말썽을 부렸다. 올해는 의복에 지출한 돈 대부분을 운동 의류가 차지했는데, 덕분에 꽤나 쾌적하게, 날씨에 상관없이 뛸 수 있었다고 본다. 그냥 츄리닝이랑 뭐가 다르겠어, 라면서 속는 셈치고 샀었는데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도 헤어지지도 않고, 보온성과 통기성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두번째로 부가적인 운동을 꼽을 수 있다. Runner's knee로 크게 고생한 뒤, 러닝 전후 간단한 체조만 하던 것에 무릎 주변 근육 강화를 위한 운동과, 운동 후 폼 롤러를 사용한 스트레칭을 추가했다. 처음엔 정말 귀찮았지만 몇달이 지나도록 무릎 통증이 재발하지도 않고, 운동 후 몸의 무거움도 많이 사라졌다. 요즘엔 바를 설치해 턱걸이 같은걸 해볼까 고민 중이다.

내년의 최종 목표는 최소 1650km 가량을 달리는 것. 내년 1/4분기의 목표는 1회당 거리는 7.80km로 줄이고 평균 속도를 5'10''/km 로 단축하는 것이다.






3. 기타

게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엔딩을 본 게임의 수가 적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통틀어서 정통 RPG를 가장 적게 플레이 한 해이며(당장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다), 슈터 요소가 강한 게임을 가장 많이 플레이 했던 해이다(콜옵, 배틀필드, 오버워치, 이블위딘, 폴아웃4, 타이탄폴2,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페인).

가장 인상에 남은 게임 세가지를 꼽으라면 먼저 타이탄폴2. 플레이 하는 내내 포탈2와 아머드 코어가 계속 생각났다. 두 게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캐릭터 간의 상호작용, 퍼즐, 그리고 화끈한 1대1 메카전)을 모두 가져왔으면서도 어색한 부분이 없는 종합 선물세트같은 게임이었다.  두번째론 라이즈 오브 툼레이더. 리부트한 전작을 무난하게 계승했을 뿐인 게임으로 시나리오도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게임 디자인이 억소리나게 독창적인 것도 아닌데 왠지 장면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게임 자체가 아닌 그 설산과 유적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론 메탈기어 솔리드 팬텀패인. 사실 이건 아직 진엔딩을 못봤는데 각 미션을 다양하게 클리어하는 그 자유로움과 캐릭터의 매력이 계속 게임을 잡고 있게 만든다. 옛날 하교길에 오락실에서 철권 한판씩 하고 오던것 같은 느낌으로.

내년엔 PS4 독점작인 호라이즌:제로 던과 라스트 가디언, 이미 얼리억세스로 출시된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 정도를 플레이 해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좀 뜬금 없지만 오늘 새벽에 꾼 꿈을 적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년을 이렇게 살아가고 싶은것이 아닐까, 하는 소망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생은 칠색조의 깃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곳은 분명하지 않은 장소였다. 삼성역에서 코엑스 빌딩으로 나오는 곳처럼 보이기도 하고, 광장으로 이어지는 만신전 앞 같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오가는 와중에, 공중을 가득 메운 모래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것 사이를 이따금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나는 칠색조의 도톰한 배가 그 사이로 혹시나 엿보이진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대하다는 그 전설의 새는 이따금 구름과 먼지 사이로 깃털을 떨구곤 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땅에 닿은 그것은 범용한 다른 새의 깃이나 그도 아니면 별 쓸데없는 사물들로 모습을 바꾸었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도통 진척이 보이질 않았다. 처음에 그 탐색은 크리스마스 같았다. 나는 기대에 가득차 있었고 모든 것은  칠색조의 깃털일 가능성을 담은 선물상자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손에 잡은 모든 것은 꽝이었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고, 입을 단속하지 않게 되었으며, 별 시덥잖은 일로 동생 탓을 했다. 너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가 쉬는게 낫겠다며 동생을 쫓아보냈다.

그렇게 나는 혼자 그 장소를 헤맸다. 그 사이 동생은 멀찍이 떨어진 곳 앉아있었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생에게 왜 거기에 매일 나와 있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칠색조의 깃털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내 칠색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십여일이 지난 어느날, 모래와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근사한 자태를 오랜만에 드러내었다. 멋진 석양을 구경한 사람들은 이내 솜사탕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함박눈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는 어떤 새의 깃털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칠색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나와 눈을 즐기는 한편 깃털들을 주워 모았다. 어떤 것은 딱정벌레의 갑옷처럼 매끈한 암갈색이고 어떤 것은 동해처럼 투명하고 아른한 푸른색이었다. 그것은 칠색조의 깃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보였다.

어떤 아이가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먹던 과자를 흘린 것처럼, 흥겨움에 팔장구질을 하다 모자를 떨군 것처럼. 나와 동생은 동시에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러자 그것은 무지개처럼 물이 든 아름다운 칠색조의 깃털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무지개 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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